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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장덕상 선생이 자신이 작업한 훈민정음 해례본 석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
훈민정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훈민정음 해례본을 석판으로 제작해 화제가 된 한국금석문각자예술연구원 향석(香石) 전홍규, 여천(與天) 장덕상 선생을 찾아 제작 동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 광개토태왕비를 실물크기로 재현한 서예⋅석각 명장
충남 보령에 있는 한국금석문각자예술연구원. 이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비석, 조각 등이 진열되어 있다.
앞마당에는 광개토태왕비, 신라봉평비, 백제 사택 지적비 등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비석을 실제크기로 재현한 것이 눈길을 끈다.
특히 높이 6.4.m의 광개토태왕비는 크기와 모양, 그 속에 새겨진 글씨까지 중국 집안의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다.
향석 전홍규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금석문석각예술연구원장, 고구려문화원장, 한국전각학회 이사, 보령시 오석 홍보대사, 대전대학교 서예과 외래교수 역임, 개인전 7회(서예, 석각, 인장) 등 서예와 전각 부문에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40여년 전까지 서예가의 길을 가던 향석 선생은 1970년대 중반 태왕비의 위조 문제로 동양 삼국이 들끓자 붓 대신 정을 잡고 금석학의 길로 들어섰다.
향석 선생과 함께 작업하는 여천 장덕상 선생은 돌에 문자, 그림 등을 새기는 석각 전문가로 최근 충남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훈민정음 해례본 석판본 제작하겠다는 예술적 호기심과 장인정신
이들 두 명의 전문가는 지난 일 년간의 작업기간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 석각본을 완성했다.
제작동기에 대해 이들은 “훈민정음을 세종대왕께서 최초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보급했다. 그것이 양각의 기술이다. 이후에 음각본이 있다는 얘길 들어보질 못했다. 따라서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음각본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단순한 제작동기지만 예술가적 호기심과 자신의 작품이 최고라는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 오석에 직접 새기는 도법, 한 판 완성에 한 달 걸려
그렇지만 제작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작 방법은 작업도로 음각하는 방법이다.
석각 방식에는 정으로 돌을 쪼는 타법(打法)과 작업칼로 정교하게 파내는 도법(刀法)이 있다.
비석과 같은 큰 작업물에는 타법을 사용하지만, 해례본과 같은 작고 정교한 작업물에는 작업칼로 세밀하게 조각하는 도법으로 작업해야 한다.
작업에 쓸 돌은 청석(연석) 계통으로 벼루를 만들 때 쓰는 검은 돌[烏石]을 사용한다. 보령지역은 오석(烏石)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보령오석은 흑색 사암으로 검은색 빛이 나며 글자를 새기면 흰색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작업은 오석을 다듬어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후 원본(탁본)을 돌에 붙이고 칼로 정교하게 파내는 도법으로 작업한다. 도법은 머리카락까지 묘사가 되는 세밀한 작업이 가능하다.
작업 도중에 오류가 생길 경우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한다. 그만큼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한 판을 작업하는데 한 달의 작업기간이 소요되지만, 밤샘 작업을 거듭해 해례본 33판(66쪽)을 1년여에 걸쳐 완성했다.
■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좀 더 큰 훈민정음 해례본 선보일 계획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전홍규 선생은 “현재 크기보다 10배 큰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옛날에는 종이가 부족했으니까 작은 크기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좀더 크게 만들 수 있다”면서,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나타냈다.